JCI-중대구청년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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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창시자

Henry Giessenbier
(1892 ~ 1936)

"훌륭한 인격과 시민정신이 깃든 이 조직속에서
  언젠가는 위대한 사회가 이룩되리라 믿는다."

“From within the walls of the soul of this organization
where in the foundation of character and good citizenship are laid
I hope a message will come in the some time of tomorrow.
That will stir the people toward peace.”

- Henry Giessenbier

미국 Jaycee전쟁기념본부 전시관에는 헨리 기센비어의 청동 흉상이 세워져 있다. 높이 2피트의 이 구리 흉상은 "헨리 기센비어"라는 인물에 비하면 작은
기념품에 불과하다. 그는 인내심이 대단한 인물로 불가능에 도전하여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야망이 강했다.
그러므로 기센비어의 야망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은 이기심이 아닌 타인과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그의 굳은 결심 때문이었다. 그의 꿈은 타인을 위한 봉사에 있었다. 그의 계획은 많은 젊은이들이 지역사회의 현안문제에 참여하고 대중을 위해 헌신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전망은 오직 Jaycee라고 하는 세계적인 단체를 통해 현실화되었다.
헨리 기센비어는 1892년 7월26일 기센비어 집안의 6남매 중 한 사람으로 태어나 미조리주 센 루이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친은 엄격하면서도 친절한 독일인 이민자였고, 그의 모친은 유순하고 정이 두터워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기센비어 가족은 1990년 초 센 루이스의 평범한 중산층 집안들 중의 하나였다. 비록 빈곤에 허덕일 정도는 아니었으나 헨리는 매우 어렸을 적부터 일을 배웠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헨리는 일찍이 현실에 눈을 떠 사회생활에 뛰어든 것이다.

1909년 기센비어는 은행가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 후 은행은 그의 영원한 직장이 되었다. 처음 몇년 동안은 은행업무를 배우기 위해 무수한 열정을 쏟았다. 장부정리나 그 밖의 업무를 공부하기 위해 그가 은행에서 밤을 세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1910년 그는 허큘라네움 댄스 클럽을 차렸다. 사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이 클럽은 뒷날 청년진보시민연합(YMPCA)의 기초(基礎)가 된 것이다. 이때가 1915년. Jaycee의 전신인 이 단체는 단지 댄스클럽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젊은이들의 공민과 지역문제 참여라고 하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 단체는 그후 "Junior Citizens"로 이름을 바꾸었고 (JC's하는 약자는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1918년 센 루이스 상업회의소와 연합한 이후 그 명칭이 지금의 청년상업회의소(Junior Chamber of Commerce)로 변경된 것이다.

Jaycees창설자의 타인을 위한 봉사는 그 단체 밖에서도 이루어 졌다. 애국심이 남달랐던 그는 일차 세계대전에 참가해 2년동안 육군 하사관으로 복무하였다. 고향으로 보내진 그의 편지에는 당시의 전시상황이 자세히 적혀있다. 포탄 투하가 시작되던 어느날 그는 참호속에서 커버를 씌우고 있는 한 병사를 지나치게 되었다. 그때 그 병사는 기센비어에게 같이 참호속으로 피하고자 사정했다. 그러나 기센비어는 뭔가가 자신을 계속 끌어당기고 있다고 말하고 전진을 계속했다. 그리고 나서 몇분 후 그 참호는 직격탄을 맞고야 말았던 것이다. 결국 기센비어의 고집은 그의 생명을 구한 셈이다.

제대 이후 그는 다시 전격적으로 Jaycees 활동에 관여했다. 1920년 여름, 제1회 내셔녈 컨벤션에서 이 단체의 공식명칭이 미국청년회의소로 확정지어 졌으며, 기센비어는 이때 제1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미국 Jaycees에 대한 그의 전망을 이렇게 피력했다. "... 이제 이 위대한 단체의 운명은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Jaycees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를 적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위대한 미국을 건설하기 위한 젊은이들의 요구와 관심을 수렴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기센비어는 Jaycees 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나 클럽에도 가담하여 그의 리더쉽을 발휘하였다. 그는 광고 클럽을 운영하는 등 특히 대중 감화 연설에 커다란 열정을 보였다. 기센비어의 성공은 단지 이들 단체활동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그는 또한 뛰어난 금융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성공가도는 당시의 젊은이들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헨리 기센비어는 그러나 항상 병고가 끊이질 않았으며 1930년에 들어 그의 건강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차례의 수술을 받고 다시 그의 활동이 재계되는 듯 했으나, 1933년 은행불법거래 및 자금처리과실 문제에 연루되어 사실상 그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지금까지 대중봉사를 위해 헌신해 왔던 한 사람으로서 그 사건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사건의 원인은 경제공항으로 빚어진 자연손실이라는 것이 밝혀져 그 소송은 중도 기각되었다. 비록 그의 혐의가 완전히 풀리고 명예도 회복되었으나, 그 사건은 마치 검은 구름처럼 그의 인생을 뒤덮고 있었다.

법원 청문회가 끝나고 일년이 채 못되어 그는 신장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때가 1925년 11월 7일, 미국 Jaycees의 또 다른 선구자인 존 암부르스터는 이렇게 그를 기렸다. "그는 영광이 무엇이고, 또한 역경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둘을 똑같이 취급했다. 그는 영광에 안주하지도 않았고 역경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의 인생은 그가 아무리 험난한 길을 가고 있더라도 분개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그런 삶이었다."

기념관에 세워진 그 동상은 헨리 기센비어라는 위대한 인물을 상징하는 하나의 작은 조감품에 불과하다.
그의 인품과 정신은 Jaycees를 통하여 영원히 반영(反映)될 것이다.

JCI 개요

JCI(Junior Chamber International)는 인종, 국적, 신앙,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건실한 사상을 가진 만 20세부터 40세(대한민국은 45세)까지의 젊은이로 구성된 범세계적 순수 민간단체이다.

JCI(국제청년회의소)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간다는 책임과 사명감을 가지고 청년들이 지닌 무한한 잠재능력을 개발하고 지역사회 활동을 통하여 미래 지도자를 양성하고, 세계 회원국가와 교류로 세계평화와 인류복지 향상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JCI 역사

1915년 10월 13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당시 은행원이었던 기젠비어(Herry Giessenbier)에 의해 결성되었다.
그는 미국 미주리주의 세인트 루이스시에 위치한 선교사 숙소에서 1915년 ‘페기’라는 소녀가 길가에서 놀다가 교통사고로 참변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어린이들에게 공원을 만들어 교통사고 재발을 막고 지역사회의 각종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32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진보적 청년시민협회(YMPCA)’를 만들기로 협의를 보았으며, 이것이 JC운동의 태동을 향한 첫걸음 이었다.

그리고 1944년 12월 11일 멕시코에서 8개국 대표가 모여 국제청년회의소(JCI)를 창설하였고, 현재 전 세계 120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는 가운데 전 세계 6,000여 지역에서 20여만 명이 JC활동하고 있다. JCI 본부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시에 위치하고 있다.

JCI 4대 개발기회

현재 각 나라 각 지방JC에서는 공통된 슬로건으로 수련(Traning), 봉사(Service), 우정(Friendship), 사업(Business)을 JC의 목적달성을 위한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지도자 훈련을 기초로 하는 개인능력개발, 국제경험개발, 지역사회개발, 사업능력개발이라는 4대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JC 운동은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능력을 수련·계발하는 것이며, 이 힘을 합쳐서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그 훈련과 봉사를 바탕으로 회원 전체가 두터운 우정을 갖게 된다.